- 가마솥가마솥|순창장(1987),순창장(1990),순창장(1990),순창장(1989),순창장(1989)|2/1_1,2/1_2,2/1_3,2/1_4,2/1_5|봄이면 가마솥 밥 위에 찐 쑥개떡|추운겨울날 가마솥뚜껑은 그야말로 지금의 전자레인지처럼 무엇이든 데웠다. 가마솥 뚜껑 위로 양말과 장갑이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빨간 속내복도 올려 지곤 했다. 또한 봄이 되면 가마솥 밥 위에 찐 쑥 개떡을 먹었고, 여름이면 감자와 옥수수를 쪄서 평상에 앉아 도란거리면 식구들 웃음소리가 하늘 끝에 매달렸었다. 이렇게 내 유년은 부뚜막 위에 까맣게 앉아있는 가마솥과 함께였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장터에서 가마솥을 팔거나, 구멍 난 가마솥을 경운기에 싣고 나와 고쳐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네 장터는 물건보다, 물건 파는 사람 얼굴을 본다. 결국은 물건이 사람 얼굴이기에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곡성옥과장에서 만난 김씨할매가 내게 했던 말이다. “새악시, 시골장은 기냥 장이 아녀, 예서 물건도 사고 사람들도 만나고... 살면서 없어선 안되는 곳이 장이여, 여그 사람들은 존데가 생겨도 딴디로 안가. 고것이 사람 사는 정(情) 아니겄어?”
- 강아지강아지|남원장(1988),남원장(1991),남원장(1991),남원장(1991),담양장(1988),담양장(1993),담양장(1993),정읍장(1990)|2/2_1,2/2_2,2/2_3,2/2_4,2/2_5,2/2_6,2/2_7,2/2_8|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견우와 직녀가 이별할 때 흘리는 눈물처럼 비가 간간이 내리는 칠월 칠석 날, 한 여인은 비닐봉지에 강아지를 넣은 채 머리만 내놓고 있다. 이런 장면을 만나면 조상들의 생활철학이 엿보인다. "꽃은 약간 덜 핀 놈을 , 과일은 조금 덜 익은 놈을 고르듯, 밥일랑 배불리 먹지 말고, 세력은 남김없이 부리지 말며,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다하지 말고, 복은 남김없이 누리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조상들은 '구푼철학'을 생활화 하면서 살았다. 시골농가 어느 집을 가도 누렁이 한 마리가 들에 나간 빈집을 지키고 있다. 땅의 정직함을 믿고 살듯이 개에게 집을 통째로 맡겨놓고 밭도 매고, 이웃집 나들이도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 식구가 되어 간다. 행여 비에 젖을까 비닐봉지에 싼 모습이 정겹다. 강아지는 새 주인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이미 한식구가 되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지능력이 부족한 개가 아무에게나 덤비는 경우를 일컬어 비유한 말이지만 자기분수도 모르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말이다.
- 경운기경운기|고창상하장(2014),고흥도화장(2012),고흥도화장(2012),삼도봉장터(2014),안동녹전장(2014),영동장(1993),제주세화장(2013),판교장(2015),|2/3_1,2/3_2,2/3_3,2/3_4,2/3_5,2/3_6,2/3_7,2/3_8|경운기타고 장 나들이하는 노부부의 하루|장터에 가면 서로서로 기대 사는 것이 보이고, 아는 사람이 있어야 장터에 있는 명분이 생겨 서로 말만 건네면 즉석에서 형님아우가 된다. 장에 나오는 교통수단이 부족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경운기를 타고 장에 나왔다. 지금도 시골면장에 가면 경운기를 타고 장터에 나오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경운기가득 무와 배추를 갖고 나와 농사를 짓지 않는 지인을 만나면 봉지가득 담아준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이씨할배에게 “워매 아재, 할매한테 혼나면 어쩌까이.” 장터에서 이들을 지켜보면 농사일은 여자가 다하는데, 인심은 남자들이 낼때가 있는데 이씨할배도 마찬가지였다. “그거 알고 있당가? 옛날에는 콩 한쪽도 나눠 묵고 살았네. 시방보다 더 어렵게 살았써도, 돈보다는 사람 정으로 살았승께 나눠묵어야제.” 이렇듯, 장터에 가면 사계절을 날것 그대로 만난다.
- 곰방대곰방대|구례장(1988),송정리장(1990),영동장(1990),영동장(1992),충주장(1988),충주장(1988)|2/4_1,2/4_2,2/4_3,2/4_4,2/4_5,2/4_6|장터에서 만난 곰방대|불과 27년 전까지만 해도 장터에서 쌈지담배를 꺼내 긴 곰방대에 넣어 피웠다. 내가 어렸을 적 볼 우물이 움푹 들어간 윗집 외동할매는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온종일 곰방대를 입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시간을 조각내서 다시 그 시간을 태우는 외동할매는 곰방대연기에 따라 옛날이야기도 바뀌었다. 담배가 우리서민들의 기호품이 된 때가 18세기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워대는 기호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담배는 우리일상생활을 지배할 정도로 산업과 생활풍속,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기나긴 겨울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을 때 담배를 피워 물자 빈방에 봄도 함께 피어난다면 아직은 담배가 맛있을 때가 아닐까...
- 곶감장곶감장|완주고산장(2014),완주고산장(2014),완주고산장(2014),완주고산장(2014),완주고산장(2014)|2/5_1,2/5_2,2/5_3,2/5_4,2/5_5|호랑이도 무서워한 곶감장터 완주고산|옛사람들이 말하길 감에는 일곱 가지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한다. 감나무에는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고, 그늘을 만들어 주고, 수명이 오래가며, 단풍이 아름답고, 낙엽은 거름에 좋고, 열매인 감은 맛이 뛰어나다고 해서 일곱 가지다. 이렇듯 자연에서 오는 것은 그 쓰임새마저 자연으로 돌아간다. 겨울철 완주고산장에 가면 온 장터가 곶감을 갖고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구례산동장도 12월과 1월이면 빨간 산수유로열매로 온 장터가 붉다. 그 지역만의 땅과 바람과 햇빛과 물이 사람들 손길에 맞닿아 특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으로서 사람살이를 이끌어가고 있다.
- 닭 이야기닭 이야기|공주장(1990),괴산장(1989),구례산동장(2012),구례장(1989),순창장(1988),영암장(1992),영암장(1992),임실장(1991)|2/6_1,2/6_2,2/6_3,2/6_4,2/6_5,2/6_6,2/6_7,2/6_8|새벽녘 장 닭이 10번 이상 울면 풍년든다는 옛이야기|손자 운동화 사주고 싶어 집에서 키운 장닭을 갖고 나온 박씨할배가 대뜸 나를 불러 세우며, “요샌 닭도 늦잠을 자뿌러, 근게요놈이 새벽에 울어야 쓴디 해가 벌겋게 뜬 대낮에도 울어쏸당께. 거 뭐시여, 근께 말이여, 새벽에 열번이상 장닭이 울면 풍년든다고 헌 얘기는 들어봤소. 옛날조상들은 별것도 아닌 것을 믿고 그랬제. 어디 그뿐이간디, 역서는 며느리가 닭 머리 먹어 싸면 시어매 눈 밖에 난다고 못 먹게 했어라. 아따메 이런디서 여자선상님을 본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도 다 옛말이구먼...” 닭은 우리 삶과도 밀접해 많은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닭 목을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것과, 닭이 감나무에 올라가면 재수가 좋다고도 하고, 쌍알을 낳으면 집안에 복이 들어오고, 닭이 나무 밑에서 놀면 그 집안에 인재가 나온다고 한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생물을 귀히 여기는 옛 어르신의 마음이 엿보인다.
- 대장간대장간|고령장(2013),논산연산장(2012),무안장(2013),순창장(1991),제주한림장(2011),진천장(2011),해남남리장(1991)|2/7_1,2/7_2,2/7_3,2/7_4,2/7_5,2/7_6,2/7_7|장터에서 만나는 대장간|대장장이의 최초의 기록은 신라의 석탈해(昔脫解)라고 하지만, 조선후기 때부터 스스로 농기구등을 만들어 장터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으로 바꾸어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메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는 대장장이의 손길에서 튼실한 호미와 낫이 만들어 진다. 메질을 오래한 눈썰미로 호미를 사용한 여인네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대장간아저씨다. 장터에서 반평생 사람을 만나다보면 사람 속도 훤히 보인다는 대장장이의 미소가 불속에서 더 환해진다. 요즘 대장간을 들여다보면 메질도 담금질도 보이지 않는다. 호미하나 만드는데 대장간에서는 1시간30분이 걸리는 반면, 기계로는 한 시간에 수 없이 찍어내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 당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산을 써본 사람은 대장장이의 호미를 선호한다. 산비탈일수록 대장장이의 호미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메질과 담금질이 쇠를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봄날이 오면 아직도 쓰다만 호미를 들고 대장간을 찾는 여인네들이 줄을 선다. 땅을 일구는 사람이 있는 한 대장장이의 메질은 계속될 것이다.
- 떡방앗간떡방앗간|봉화장(2014),양양장(2014),양양장(2014),진주금곡장(2012),진주금곡장(2012),진주금곡장(2012)|2/8_1,2/8_2,2/8_3,2/8_4,2/8_5,2/8_6|설날이 오면 시골장터 방앗간이 북새통이다|설날은 농사에 사용된 역법체계를 따른 명절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는 우리민족을 박해하며 설을 못 쇠게 했다. 한때는 어정쩡하게 ‘민속의 날’이라 불리다가 1989년부터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다. 설날이 오면 시골장터 방앗간이 북새통이다. 차례를 기다리며 줄서있는 보따리 행렬 위로 이름표가 누워 주인의 호명을 기다린다. “정월 초하룻날 떡은 보름까지 먹어야 길(吉)하다.”는 속담이 있다. 함평나산장에서 만난 할매의 말이다. “자식을 많이 맹글어 그때는 숭이었는디, 시방은 자랑이여, 무단시 옆에서 부러워해싸. 설이믄 전국각지에 있는 새끼덜이랑 손자들이 내려와, 하나라도 멕이고 싶은게 새끼덜 좋아하는 쑥떡은 안빼먹고 허요, 새악시도 엉릉 와서 맛좀 보랑께...”
- 바재기바재기|괴산장(1989),남원장(1990),봉화장(1988),봉화장(1988),봉화장(1991),봉화장(1992),영동장(1988)|2/9_1,2/9_2,2/9_3,2/9_4,2/9_5,2/9_6,2/9_7|장터에서 사라진 바재기|교통이 지금처럼 편리 하지 않았을 때는 지게에 바재기를 얹어 팔 수 있는 물건을 지고 고갯길과 산길을 넘나들었다. 결국 길이 그들의 삶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살던 고향땅에서도 지게에 바재기를 얹어 퇴비를 짊어지고 구불구불한 논두렁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풍경을 봤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장터에 바재기를 지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옛날 필름을 들여다보면 고향들판 한 자락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아낙들이 품앗이로 밭 메는 날이면 구산양반이 지고 온 바재기 안에는 찐 감자와, 손에는 막걸리를 담은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참을 먹는 여인네들의 웃음소리에 마침 지나가는 구름이 놀라 바재기 속으로 숨어든 풍경을 추억 속에서 꺼내본다.
- 보따리 인 여인보따리 인 여인|구례장(1992),구례장(1993),순창장(1988),순창장(1989),순창장(1991),영동장(1994),진안장(1988)|2/10_1,2/10_2,2/10_3,2/10_4,2/10_5,2/10_6,2/10_7|자식들 생각에 가벼워지는 보따리의 무게|옛날에는 여인네의 머리 위에 늘상 보따리가 올라가 있었다. 물건 하나 사서 머리에 이고, 추운 날에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다녔다. 온종일 보따리를 인 채 장터 구석구석을 구경 다니는 여인을 따라다닌 적이 있다. 물건하나 살 때도 남을 의식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격을 흥정하고, 덤을 얻고도 모자라 입 안 가득 먹을 것을 집어넣을 때도 있다. 도시로 나간 자식이 온다며 온갖 것을 사서 보따리에 넣는가 하면, 공짜로 주는 뜨끈뜨끈한 정을 보자기에 넣어 이고 가는 풍경은 내 어머니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무거운 짊을 이려고 해서 도와드린다고 하니 그러신다. “암시랑토 안해, 개보와. 보깡하고 힘 한본 쓰문 됀당께.” 생을 얼마쯤 살아오면 할매 같은 배짱이 나올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온몸으로 살아낸, 온몸으로 자식들을 살려낸 엄마의 힘이다. “새끼덜을 포도시 믹이기만 해서 짠허다.”는 우리엄마들의 목소리가 따사로운 햇살 속에 퍼져 바람길 따라 자식에게 전해진다. 이것은 우리엄마들이 살아낸 한 생(生)이다.
- 뻥튀기뻥튀기|구례장(1988),구례장(1988),금산장(1993),보령웅천장(2012),예산장(2011),청양장(1991),함양장(2012)|2/11_1,2/11_2,2/11_3,2/11_4,2/11_5,2/11_6,2/11_7|뻥튀기가 벽장에서 나올때면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지금과 같이 간식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가장 손쉬운 군것질거리가 곡식 낱알을 몇 배로 불려놓은 튀밥이었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밖으로 나오면서 하얗게 주위를 둘러싸고 부풀어진 낱알들이 튀어 나올 때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뻥튀기 장수 주위에 아이들이 진을 치곤했다. 어렸을 적, 긴 겨울밤 벽장에 숨겨두었던 튀밥을 큰 양판에 부어놓으면 왁자지껄하던 식구들은 말없이 손등을 부딪치며 피식피식 웃을 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입과 손이었다. 지금도 시골장터 뻥튀기주위에는 여인네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장터바닥을 쥐락펴락한다. 나주복사골장터에서 만난 박씨할매가 뻥튀기 주인에게 한마디 한다. “와따메, 귀떼기가 떨어져불라그요.”
- 수의옷감수의옷감|고창장(1991),선천한산장(2012),순창장(1989),청양장(1989),|2/12_1,2/12_2,2/12_3,2/12_4|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놓아도 아무 탈이 없다|윤달(閏月)은 이름하여 공달(空月)인데, 일 년 열두 달 외에 불어난 한 달이다. 윤달이 사람의 피부, 신체부분에 있는 달이라고 하여 우리속담에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놓아도 아무 탈이 없다”고 할 만큼 무탈한 달이다. 오늘은 엄마를 위해 준비해놓은 수의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번수의가 벌써 2번째다. 장롱 속에 10여년 넣어 두었는데 모시로 만든 수의가 생명력을 가졌는지 시간에 의해 제 기능을 못할 만큼 소멸되었다. 수의 옷을 준비해놓으면 부모가 오래 산다는 설이 거짓은 아닌 듯하다. 윤달에는 아무런 재액(災厄)이 없다는 풍문에 장터난전에서 수의옷감을 팔았었다. 장터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수의옷감을 팔던 충남 청양장 할매의 말이 걸작이었다. “이 모시옷감으로 수의 지으면 극락세계로 갈거구먼유!”
- 신기료신기료|광양장(2015),남원장(1991),순창장(1989),순창장(1991),예산삽교장(2012),홍성장(2011)|2/13_1,2/13_2,2/13_3,2/13_4,2/13_5,2/13_6|고무신을 때워주던 신기료장수는 어디로 갔을까|장터에도 변화가 보인다. 요즘은 신기료장수를 흔하게 볼 수가 없다. 세상이 바뀌다보니 장터를 지키던 풍물이 하나둘 사라져간다. 떨어진 고무신이나 장화, 우산을 들고 장날이면 신기료장수 옆에 붙어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무신은 이미 때워져있었다. 몇해 전 강원도 도계장에서 강씨할매가 찢어진 고무신을 때워달라고 신기료장수한테 맡기니 수선비가 5,000원이란다. 이에 발끈한 할매가 “내 그 고무신을 5,000원주고 샀드래요. 그 옆구리 살짝 때워주는데 뭔돈을 그리 많이 달래요” 다시 찢어진 고무신을 건네받은 강씨할매 입술을 쭈빗 거리며, 마침 지나가는 바람에게 한마디 한다. “칼만 안들었지 완전 날강돌세”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은 그저 말없이 미소로 한통속이 되어주는 것이다.
- 씨앗장수씨앗장수|거창장(1988),거창장(1988),대화장(2011),부여장(2011),순창장(1990),순창장(1990),영동장(1988),장수장(1991),정선증산장(2011)|2/14_1,2/14_2,2/14_3,2/14_4,2/14_5,2/14_6,2/14_7,2/14_8,2/14_9|저잣거리에서 만나는 씨앗장수|땅은 보물창고다. 온갖 씨앗에 비밀을 담아 봄이 되면 보물창고에 시간을 심어 넣는다. 바람소리와 풀 소리 그리고 물소리마저도 비밀이 되어 땅속에서 만난다. 여름 내내 밭을 매면서 호미끝자락에 비밀을 묻어놓아 가을이 되면 캐내는 것이다. 드넓은 땅에 농작물을 심어 놓고 어느 밭에서 순이 제일 먼저 돋아나고, 어떤 농작물에 마지막으로 해가 스며드는 것까지 훤히 꿰고 있다. 내가 최초로 농사를 진 것은 어렸을 적 논둑위에 콩을 심고부터다. 콩을 심은 것 까지는 좋은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논둑으로 향했다. 여린 콩잎이 비 맞을까봐 우산 밑에는, 동그러니 나와 콩잎이 앉아 있곤 했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난 후, 밥상 위에 올려진 콩밥을 먹을 때마다 식구들의 동그란 웃음소리가 둥둥 떠다니며 재잘거렸다. 그래서 지금도 농작물이 커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장터를 찾아다니는 것도 산과 들에서 일어나는 비밀한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툭하고 말 한마디 건네면, 그네들이 금새 나와 친구가 되어주는 맛에 홀려 지금도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 장터 나들이장터 나들이|고창장(1989),고창장(1992),구례장(1988),구례장(1990),구례장(1992),구례장(1993),금산장(1989),금산장(1991),송정리(1990),순창장(1988),안동장(1990),영동장(1991),영동장(1991),임실장(1988),진도장(1994)|2/15_1,2/15_2,2/15_3,2/15_4,2/15_5,2/15_6,2/15_7,2/15_8,2/15_9,2/15_10,2/15_11,2/15_12,2/15_13,2/15_14,2/15_15|장터나들이에 나선 어르신들|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노인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속은 텅텅 비워가면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동네구석구석, 내 동무였던 깨순이네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장날이면 온 동네가 잔치 집처럼 분주했다. 앞집이건 뒷집이건 토방위에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누워있었고, 동구 밖 태극기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동네어르신들이 장롱 속에 들어있던 한복을 차려입고 장터나들이를 했다. 내가 살던 마을입구에는 500년 된 팽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평상에 마을어르신들이 곰방대에 쌈지담배를 넣어 물고, 온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가 초저녁달이 저수지를 건너 젖은 얼굴을 내밀면 집으로 향했다.
- 장터에서 만난 얼굴장터에서 만난 얼굴|구례장(1994),금산장(1989),나주장(2013),보은장(2014),송정리장(1989),순창장(1987),영동장(1989),영동장(1989),예천장(2013),임실장(1989),진도장(2013),진주반성장(2012),청양장(1990),해남송지장(2013)|2/16_1,2/16_2,2/16_3,2/16_4,2/16_5,2/16_6,2/16_7,2/16_8,2/16_9,2/16_10,2/16_11,2/16_12,2/16_13,2/16_14|장터에서 만난 얼굴|사람이 그리워서 호박 한 덩이 갖고나와 온종일 바람과 햇빛과 놀아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 곳이 장터다. 우리선조들의 정신이 숨어있는 장터에는 우리의 원형인 정체성이 살아있다. 장터 골목 귀퉁이에서 홍시감 몇 개 소쿠리에 담아, 고루내리는 햇빛을 등에 이고 앉아있는 할머니얼굴에는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장에 나온 사람들 얼굴을 들여다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다. 한 할머니 얼굴에서 아쟁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얼굴에서 삶을 관통하는 그네들이 살아낸 모진 세월이 빚은 남도육자배기가 흘러넘친다. 그런데 장터에도 그 지역만의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얼굴은 서구인을 닮아가고, 물건과 패션도 우리 것이 아닌 퓨전으로 변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삶의 원형과 정체성을 하나둘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텍스트 없는 사회학이 사진이라고 한다. 우리얼굴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배운다.
- 저울추저울추|곡성장(1988),금산장(1988),금산장(1988),남원인월장(2012),영암장(1989),완도노화장(2014),장흥대덕장(2013),진천장(1988)|2/17_1,2/17_2,2/17_3,2/17_4,2/17_5,2/17_6,2/17_7,2/17_8|저울추에 마음의 무게를 달아본다면?|다산선생은 천하에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是非)고, 다른 하나는 이해(利害)로 이롭고 해로움에 대한 저울이라고 했다. 세상일을 재는 저울과 저울추가 어디로 기우느냐는 자신이 잴 때와 남이 잴 때 그 기준이 달라진다. 똑같은 일과 사물을 재면서도 자신을 잴 때는 저울 눈금이 낮은 것 같고, 남을 잴 때는 저울 눈금이 높은 것처럼 보인다. 이게 사람 마음이다. 저울추가 바르지 않으면 무게를 다는 저울 또한 그 기능을 잃는다. 장터에서 저울은 물건보다 물건주인 마음을 추에 단다. 조금 차이가 나도 “어째 추가 왔다갔다 허요?” 하면 끝이다. 자신의 이익도, 상대의 이익도 없이 서로에게 똑같이 배려하는 그 마음을 나누는 곳이 장터다.
- 죽제품죽제품|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86),담양장(1991)|2/18_1,2/18_2,2/18_3,2/18_4,2/18_5,2/18_6,2/18_7,2/18_8,2/18_9,2/18_10,2/18_11,2/18_12|대나무 속에 귀신이 앉아있을까?|담양장하면 동트기 전에 담양천변을 가득 메운 죽제품시장을 떠올릴 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한 대나무오일장으로 2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왔었다. 1980년 화학제품이 등장하면서 죽제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금은 한국대나무박물관이나 담양 상설 판매장으로 가야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유난히 대나무를 좋아하는 내게 할머니는 대나무 안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고 대나무밭으로 내몰곤 했다. 음악이 귀했던 시절이라 대나무밭에 들어가 귀를 바짝 같다대면 안에 고여 있던 온갖 소리가 내게로 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대나무 안에서 나는 소리로 대나무 숲은 이내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조선 시대 3대 가인(三大歌人)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냐고, 속은 어째서 텅 비어 있냐고 친구를 대하듯 묻는다.
- 천원의 의미천원의 의미|남원장(1990),남원장(1991),남원장(1993),당진장(2015),서산동부시장(2011),순창장(1990),순창장(1993),|2/19_1,2/19_2,2/19_3,2/19_4,2/19_5,2/19_6,2/19_7|단돈 천원의 의미|'코스모폴리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난 역시 장돌뱅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엿보게 된다. 영화대사에는 “현실을 봐, 돈이 달라졌잖아, 돈은 돈을 위해 존재해, 다른 의미는 없어, 돈은 살아있는 놈 같아, 돈이 시간까지 만들잖아, 이젠 돈이 전부가 됐어, 영원따윈 없어!” 노벨문학상 후보 돈 드릴로의 원작소설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다. 리무진이라는 시스템 속에 박제해놓은 주인공의 하루 삶이 외부와 유리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인간군상 전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시골장터의 열린 공간에서 단돈 천원에 실랑이를 벌이는 안씨할매의 삶과 에릭파커(로버트 팬틴슨)가 리무진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교차되었다. 시골장터에서 천원이라는 가치는 엄청나다. 호떡을 하나사도 300원이 남고, 동그란 찹쌀 도너츠 두 개나 살 수 있으면서도 장터에서 천원이면 내 점심까지도 해결할 수 있었다. 영화대사처럼 돈은 살아있는 생물이지만, 장터할매의 돈은 그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정(情)이다.
- 화문석시장화문석시장|강화장(1986),강화장(1986),강화장(1986),강화장(1986),강화장(1986),강화장(1986)|2/20_1,2/20_2,2/20_3,2/20_4,2/20_5,2/20_6|60만 번의 손길로 만들어진 강화 화문석|화문석은 세 사람이 한조를 이루어 짜기 때문에 강화에서 딸 셋만 있으면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산에 밀려 화문석 만드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녘에 화문석장이 열려, 왕골과 화문석을 갖고 나와 누구문양이 아름다운지 서로 구경하기 바빴다. 화문석을 완성하려면 60만 번의 손길이 닿아야 모양새를 나타내니 그야말로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은 습하면서도 날씨가 맑고 따뜻해야 잘 자란다. 여름에 비나 태풍이 오면 왕골이 제 색깔을 내지 못한다. 밤에 이슬 맞힌 왕골을 햇볕에 말려야 왕골이 지닌 푸른 빛깔을 낼 수 있어 화문석 값이 들쑥날쑥 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다. 시간은 어떤 이에게 빠르게 흘러가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느림보처럼 멈추다가 아주 느리게 한 방울씩 흘러가는 것 같다. 마치 자기 삶이 시간을 만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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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남 봉은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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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 번의 손길로 만들어진 강화 화문석|화문석은 세 사람이 한조를 이루어 짜기 때문에 강화에서 딸 셋만 있으면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산에 밀려 화문석 만드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녘에 화문석장이 열려, 안골과 화문석을 갖고 나와 누구문양이 아름다운지 서로 구경하기 바빴다. 화문석을 완성하려면 60만 번의 손길이 닿아야 모양새를 나타내니 그야말로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은 습하면서도 날씨가 맑고 따뜻해야 잘 자란다. 여름에 비나 태풍이 오면 왕골이 제 색깔을 내지 못한다. 밤에 이슬 맞힌 왕골을 햇볕에 말려야 왕골이 지닌 푸른 빛깔을 낼 수 있어 화문석 값이 들쑥날쑥 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다. 시간은 어떤 이에게 빠르게 흘러가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느림보처럼 멈추다가 아주 느리게 한 방울씩 흘러가는 것 같다. 마치 자기삶이 시간을 만드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