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이야기
양동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전체 마을 중 약 80%를 차지했던
집성촌은 현재 거의 소멸되었지만, 양동마을은 오늘날까지도 씨족마을,
즉 집성촌으로써 명맥을 이어오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이 마을의 형성 과정을 보면, 조선 시대에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가 사돈지간이
되면서 두 성씨의 집성촌이 되었고, 두 성씨는 서원과 서당도 각자 따로 세워 공존과
경쟁의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특히, 양동마을은 수많은 문인 학자를 배출했다.
과거 마을에서 117명의 과거 급제자가 나왔고 당시 경주 지역 장원급제자
59명 중 29명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마을의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양동마을의 가옥은 유교 예법에 따른 구성을 보여주는데, 씨족 마을의 대표적인
구성요소인 종택, 살림집, 정사와 정자, 서원과 서당, 그리고 주변의 농경지와 자연경관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 유산은 물론 전통 의례, 놀이, 저작,
예술품 등 수많은 정신적 유산들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양동마을의 가치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유산이라는 점이다. 이제 오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마을을 둘러보며
잊혀진 전통의 가치를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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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은 안골 중심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이다.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월성 손씨의 종가이다. 한편으로는 손소가 처가에 살다가 이 집을 짓고 분가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서백당이란 당호는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졌다고 한다. 가옥은 제법 높은 언덕의 비탈면에 서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一’자형 대문채와 ‘□’자형의 몸채를 지나면 동북쪽 뒤쪽에 사당이 있다. 서백당은 현재 많이 전하지 않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가옥이자, 관가정, 향단 등과 함께 양동마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이다. 건축 시기를 비교적 확실히 알 수 있으면서 지금까지 대종가의 명맥을 잇는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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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당은 1540년경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백당의 북측 산등성이에 높직하게 자리 잡은 서향집으로, 크게 대문채·사랑채·안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중돈 선생의 아우되는 손숙돈 공이 분가한 집으로 지금은 낙선당 손종로 공의 파주손댁이다. 이 가옥은 당시 양반 부잣집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문채는 3칸이며 가운데가 문간이고 남쪽 1칸은 행랑방이며 북쪽은 외양간이다. 대문채와 사랑채 사이는 넓은 마당이며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대청이 곧바로 건너다보인다. 마당의 북변에 4칸의 광채가 대문채에 접해서 一자로 세워 졌고 광채와 대문채 사이에는 일각문을 두어 연결 짓고 있다. 이 광채는 3칸이 광이고 끝 칸은 1칸의 온돌방이다. 자연과 가옥이 조화를 이룬 낙선당을 돌아보며 조선시대 양반가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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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가문의 정신을 짐작케 한다. 관가정은 양동 마을 입구 좌측의 언덕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옥은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 손중돈 선생이 손소 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은 우수한 주택건축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일품이다. 특히 아래쪽에 배치된 하인들의 거처인 초가 4~5채가 잘 보존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손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선비의 절제된 표정을 담은 듯한 사랑채와 사랑 마루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이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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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정은 마을 외곽 서북방의 높은 암석 위에 세워 안락천과 안강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수려하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15년경에 우재 손중돈 공의 증손인 청허재 손엽 공이 건립한 정자로 전해진다. 수운정이란 이름은, “물과 같이 맑고 구름같이 허무하다.”는 수청운허(水靑雲虛)의 뜻을 따서 수운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태조의 수용영상(水容影像, 임금의 초상화)을 이 정자에 이안(移安)하여 난을 피했다고 전한다. 정자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목조 한식 기와집이다. 특히 야경이 좋은 곳으로 마을의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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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첨당은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의 종가이다.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으로 손꼽히고 있다. 무첨당이란 이름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 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를 구성하고 있는 안채, 별당채, 사당채 중에서 별당 건물이 무첨당이다. 별당 건물이기는 하지만 살림채 입구에 있고 규모도 커서 큰 사랑채 격이다. 다시 말해서 대개의 별당이 외부인의 눈에 잘띄지 않는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무첨당은 대문 옆에 자리 잡고 있어 큰 사랑채와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즘도 제사를 지내거나 문중의 큰 일이 있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사당의 위치는 가옥의 오른편 뒤쪽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의 사당은 왼편 뒤쪽에 세워져 있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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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은 조선시대 제일의 유학자라 꼽히는 이언적에 의해 지어졌다.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앞쪽에 세워진 향나무 한 그루가 상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향단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마당에 향나무가 있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이 가옥은 얼핏 보아도 무척이나 화려하고 과시적이다. 특히 마당을 앞에 둔 사랑채는 두 개의 나란한 지붕을 연결하여 풍판을 정면으로 향하도록 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一자형 평면구조로 몸채를 사이에 두고 좌측에 안채, 우측에 사랑채를 두고 행랑채도 일자형 몸채와 연접해 있어 거의 한 동처럼 보이는 집약된 평면을 이루고 있다. 향단은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점이 특징적인데, 사실 이러한 점은 풍수사상에 의거한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원래 향단은 애초 99칸 건물이었지만 임진왜란과 6·25를 겪으며 현재 51칸만이 남아 있다. 이 특별한 양동마을에서 가장 멋진 한옥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향단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처럼 양반가의 위풍당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향단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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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정은 양동마을의 동구 초입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 숙종 21년 경에 건축된 ‘ㅁ'자형 주택으로, 온양군수를 지낸 이범중 공과 그의 맏아들로 담양부사를 지낸 이헌유 공이 살던 집이다. 이향정이란 이름은 이범중의 호인 이향정(二香亭)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집의 형태는 ㄱ자형으로 된 본채를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은 홑처마 맞배집으로 전체구성은 튼 ㅁ자형으로 조리 있게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중부 지방이나 서울집의 대가들이 지니는 평면배치와 양식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이향정 곳곳에는 전통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데, 뒷 켠에 사람 키보다 낮은 문 앞에 자연스레 놓인 댓돌하나가 전통적인 가옥만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오랜 양반가의 품위와 소소한 미학을 담은 이향정의 곳곳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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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당은 여강이씨 문중의 공용서당으로 손씨 문중의 안락정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 서당은 대사간을 지낸 지족당 이연상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현재 양동 마을에는 이씨 문중의 서당이 두 채이다. 하나는 강학당이고 다른 하나는 경산서당인데, 1970년 안계댐을 건설하면서 경산서당이 이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학당의 역사가 더 깊다. 강학당은 대문과 담장을 설치하지 않은 'ㄱ'자 건물로 각기 맞배집을 붙인 것이다. 오른쪽 본채에는 2칸의 대청이 있고 그 왼쪽에 온돌 안방, 오른쪽에 온돌 건넌방이 있다. 대청 앞으로 마루방과 경판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가옥은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 공부하는 서당으로써 알맞은 가옥 구성을 하였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그림같이 자리 잡은 강학당에서 옛 선비들의 기풍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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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로 들어서면 우측 성주봉 등성이 큰 고목들에 둘러싸여 있는 심수정을 볼 수 있다. 심수정은 맞은 편 북촌에 자리잡은 향단에 딸린 정자로,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 선생의 아우 농재 이언괄 공을 추모하여 세운 정자이다. 원래 1560년 경에 건립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917년 경에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심수정은 정자와 관리사로 구분된다. 정자는 ㄱ자형 평면 양측으로 대청을 놓고 그 옆에 방을 두었는데, 좌측 후마루에서는 양동마을 전체를 내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정자를 지키는 관리사로서 건실하게 구성된 행랑채를 두었다. 대청 정면에는 ‘심수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나 대청 쪽 위에는 ‘이양재(二養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점도 특이하다. 효심이 담긴 가옥의 전통을 되새기며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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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졸당은 양동마을 북촌 중앙 산등성이의 중간지점 동측 언덕받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가옥은 희재 선생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 공이 1616년 초창하였는데, 수졸당이란 이름은 그의 호를 따라 지었다. 수졸당은 영예로운 가문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조임금 때 도승지와 대사간 대사헌을 지낸 양한당 이정규 공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가옥의 형태는 一자형 사랑채, ㄱ자형 안채, 一자형 아래채가 연이어져 전체적으로는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동남향한 一자형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서남쪽부터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사랑방을 두고, 사랑방 앞에는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를 두었다. 남향한 사랑채와 대문채가 붙다시피 연접되어 있어 동향인 안채로 보면 동향집 남대문을 이룬 셈이다. 이 가문의 가훈은 편액으로 가옥에 남아있다. 사랑 온돌방 상부에 걸려 있는 ‘양한당(養閒堂)’이라는 편액이 그것으로, 사람은 항상 덕을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소중히 하라는 의미를 담은 ‘수졸당’의 의미와 덕을 기르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양한당’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의 시간을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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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헌은 상춘고택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양동마을 안골 초임 우측 동산 근암고택 옆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 영조 6년 경에 동고 이덕록공이 건립하였고, 그의 증손으로 예조참의와 대사간을 역임한 창애 이정덕공이 동편 사당을 증축하였다고 한다. 그 후 후손인 이석찬공의 호를 따라 상춘헌이라 부르며 사랑채의 마당 동편에 조경미를 살린 동산을 꾸며 놓았다. 집의 형태는 양동마을 큰 집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형인 튼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부엌을 안방의 옆에 붙이는 일반형과 달리, 안방 밑으로 붙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부엌을 안방 밑에 붙이는 형식은 중부 지방 민가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상춘헌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나무와 꽃을 계획적으로 조경하여 아름답게 꾸몄다는 것이다. 먼저, 후원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사랑채 앞에는 화계를 만들고 꽃나무를 심었으며, 사랑채 북단에도 3단 화계를 만들어 화목을 심었다. 또한 사랑 후원에는 느티나무 숲이 울창하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상춘헌에서 가문의 역사와 기풍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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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곡고택은 양동마을에서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택이다. 이 가옥은 영조 9년에 이식중이 분가할 때 지은 것이며 후에 이언적의 14세손인 두곡 이조원의 소유가 된 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두곡 이조원이 이 집을 사들이면서 그의 호를 따 두곡고택라 불린다. 가옥은 ‘ ᄆ’자형 모양으로 살림채와 별채, 곳간채, 대문채 등의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살림채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대문채가 있고 북쪽으로는 곳간채들이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을에서 규모가 매우 큰 주택에 속한다. 두곡고택은 비교적 후대에 지어진 저택이라 언덕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가옥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다. 이 가옥은 공간마다 쓰임과 의미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안채 바로 뒤의 작은 별채로, 이곳은 딸을 기르기 위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한쪽은 곳간이고 한쪽 방은 집안의 딸이 사용하던 방으로 출가 후에도 친정에 오면 이 방을 내주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두곡고택은 산의 일부를 담장 안에 포함시켜 단을 만들고 화계를 만들어 사랑마당의 풍경을 아름답게 연출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집으로써 만들고자 한 선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지는 두곡고택의 아름다움을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