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사찰
북한에는 중세 불교의 무수한 유산들이 간직되어 있다. 북한 사찰에 대한 남북 분단전 기록에 의하면 북한 지역에는 전국의 총 31본산 중 8개의 대본산과 403곳의 사찰이 있었다.그 후 6.25 전쟁과 사회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많은 사찰이 소실되어 왔다. 최근 기록에 의하면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로 지정된 현존 사찰 등 불교 문화재는 총 78개소에 이른다.북한 국보문화재의 42%가 불교문화재로 북한 내 현존 사찰의 유적으로서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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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불사(安佛寺)는 함경북도 금야군 동흥리 성불산에 위치해 있다. 1393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외조부의 능인 유릉(楡陵)의 터를 잡을 때 지관을 보내 철령에서 부적을 날렸더니 떨어진 곳이 이곳이라고 전해진다. 1648년 큰 규모로 중건되었으며, 이후 184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43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는 극락보전과 민적당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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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사는 함경남도 고원군 영천리 반룡산에 위치해 있다. 현재 북한 국보문화유물 제 113호이다. 양천사라는 절 이름은 산 뒤의 돌샘에서 조(粟)가 나오고 물이 나와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함경남도지』에 따르면 1677년 묘련대사가 개축했다고 한다.
현재 대웅전, 만세루, 극락전이 남아있다. -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칠보산의 내칠보 기슭에 있다.
북한의 국보문화유물 제 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심사는 ‘함북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 내칠보 중에서도 절승으로 이름난 개심대에 자리 잡았다. 개심사는 함경북도에 현존하는 사찰 중 최대의 사찰이다. -
자강도 희천시 유중리 묘향산 기슭에 있다.
986년 구피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하지는 않다. ‘구피대사’란 이름은 사계절 개가죽 옷을 입고 다녀 지어졌다고 한다. ‘원명사’는 늘 둥근 달이 밝게 비치는 곳에 있는 절이란 뜻을 담고 있다. -
만수암은 자강도 희천시 향천리에 있다. 묘향산 부용봉의 남쪽 중턱에 산세가 아주 험하고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17세기 이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병월방 등이 있고, 누각이 ‘ㅁ ’자 형으로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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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 강룡산 기슭에 있다.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된 김부식의 글에 법흥사는 터만 남은 절로 묘사되어 있어 고려시대에 한동안 폐사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1123년에서 1125년 사이에 크게 중축되었고, 다시 1759년에 중건되었다. 6·25전쟁 때 일부 불탔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복구되어 오늘에 이른다. 법흥사는 특히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전국에서 승병을 모집하고 이곳에서 승군을 조직한 호국 사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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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기슭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로 한국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보현사는 986년에 창건되었고 1042년에 중건한 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보수, 중건 되었다. 김부식이 지은 「보현사사적비」에 의하면 1042년 승려 탐밀의 조카이자 제자인 굉곽이 243칸 규모의 보현사를 세웠는데, 당시의 전각 수는 24개였으며, 대중은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보현사는 31개 본산의 하나로 지정되었으며, 말사가 112개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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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사는 평안북도 태천군 상단리 향적산 중턱에 있다. 발해 때인 872년에 처음 세워졌고, 고려 때인 922년 조선 때인 1461년에 고쳐 지었다. 양화사는 서북지방에서는 묘향산의 보현사 다음 가는 큰 가람이었으며 ‘보국사’라고도 불렀다. 향적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들이 감싸고 있고 절 주변에 수백 년 묵은 고목들이 우거져 산사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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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사는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약산동대의 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약산 동대를 비롯해 이 지역은 김소월 시 「진달래꽃」의 무대가 된 ‘관서 8경’의 하나로 손꼽던 곳이다.
천주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다. 1624년 이괄의 난을 일으킨 사람들이 천주사에서 의거하였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철옹비」에 의하면 1684년 평안도 관찰사 신익상, 운산 군수 이휘 등이 이절에서 동북쪽으로 약 30미터 지점에 있는 영변 철옹성을 수리하면서 쇠락한 천주사를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천주사는 현존하는 북한 사찰 중 단청이 가장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
금광사는 평안북도 의주군 송장면 금광리의 석숭산 기슭에 있다.
창건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418년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1481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지금의 건물들은 1846년 화재로 전부 불탄 것을 1847~1851년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금광사는 금강사라고도 하였다. 지금도 만세루에는 ‘석숭산금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금광사는 가람의 규모가 큰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찰이다. -
월정사는 구월산 4대 사찰 중 현재 구월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찰로 조선 초기 절 배치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월정사 현판이나 「재령군지」에는 846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되어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월정사 사적비에 따르면 월정사는 처음 세워진 이래 여러 차례 보수되고 개건되었는데, 1650년부터 1871년까지 다섯 차례나 보수되었다고 한다.
구월산은 경치가 빼어나 ‘서해의 금강’으로 불렸으며, 특히 9월의 단풍이 아름다워 구월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
귀진사는 황해북도 서흥군 송월리 숭덕산 기슭에 있다.
「황해도향토지」에 의하면 귀진사는 12세기 중엽에 성수사 소속의 암자로 창건되었으나, 16세기 초 보우 스님이 대장경각을 짓고 불경을 간행하면서 독립된 사찰로 중창하였다고 한다. 귀진사는 일제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성불사의 말사였다.
귀진사는 극락전을 본전으로 하여 주악루, 심검당, 칠성각, 향로전 등의 건물과 7층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극락전과 주악루, 심검당만이 남아있다. -
평양시의 경관이 수려한 대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광법사는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전진의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전해진다. 본래 광법사에는 여러 전각이 있었으나 수차례 재해를 입고 복구 되기를 반복하였고, 북한은 전쟁 시기인 1952년에 전소된 것을 1991년에 조선시대 건축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였다. 북한은 광법사 복원 후 1965년부터 양강도 삼수군 중흥사에 있던 승려 양성 및 교육기관인 ‘불학원(佛學院)’을 이곳으로 옮겼다. 광법사는 평양 시내 인근에 소재한다는 접근성과 북한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복원사찰이라는 점, 한국 불교 전래 초기의 사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평양 방문시 주요한 순례 사찰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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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금강암은 평양시 순안구역 오산리 담화산에 위치해있다.
본래 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에 있는 법흥사의 말사로, ‘동금강사(東金剛寺)’로도 불렸다.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과 협곡이 아름다우며, 동쪽에 있는 금강산에 위치한다고 하여 ‘동금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동금강암은 고려 초기인 955년에 창건 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36년에 고쳐지은 것이다. -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에 위치해 있다. 정릉사는 광법사와 함께 북한이 복원한 대표적 사찰이다. 정릉사는 고구려 동명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1973년~1975년 사이 김일성 종합대학 등이 주관하여 동명왕릉을 비롯한 일대의 무덤과 유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사지가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절터가 정릉사지로 밝혀진 것은 발굴과정에서 ‘정릉(定陵)’, ‘능사(陵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와편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1993년 고구려의 고유한 절 건축 양식으로 복원하였다. 복원된 정릉사는 8각7층 석탑을 중심으로 중금당• 동금당•서금당이 있고, 중문과 회랑이 그것을 둘러싼 1탑 3금당식의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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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개성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인 관음사는 개성특급시 박연리에 있다. 970년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별대덕(別大德)’, ‘별화상(別和尙)’으로 칭송받던 법인국사 탄군이 굴 안에 관음보살상 한 쌍을 놓고 ‘관음굴’이라고 불렀고, 그 후 관음사가 지어졌다고 한다. 1393년에 크게 확장하였다가 임진왜란 당시 불탄 것을 1646년에 중창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179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5채의 당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지금은 대웅전과 승방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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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특급시 용흥동 오관사 기슭에 위치해 있다. 영통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세운 승복원 자리에 건립한 절이다. 승복원은 태조 왕건이 증조 할아버지가 살던 암자를 확장해 직접 지은 절이다. 일찍이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참배하였던 대찰이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곳에서 출가하여 천태종을 열었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되어 오래도록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의 사회문화 교류 협력이 활성화됨에 따라, 폐사 500여 년 만인 2002년 11월부터 북한과 대한불교 천태종이 함께 복원사업을 시작해 2005년 10월 31일 복원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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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금강산 촛대봉에 있다. 마하연은 대승(大乘)이란 뜻이다.
금강산 만폭동 계곡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로 유점사의 말사였다.
661년 의상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한때 53칸의 방을 가진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