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건판으로 보는 31본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불교를 체계적으로 통치하고 감독할 목적으로우리나라 전국 사찰을 31구역으로 나누었다. 이를 31본산이라고 한다.1911년 사찰령을 공포할 즈음에는 30본산 제도였으며, 1924년 구례 화엄사가 본산이 되면서 31개 사찰로 늘었다.강점기에 도입된 아픔을 간직한 31본산제도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을 때까지 계속됐다.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로 794년(원성왕 10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하여 견성사라고 하였으며 그 뒤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498년(연산군 4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위하여 능의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봉은사라고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 31본산시대에는 경성 일원을 관장하는 본산이었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에 있는 절로 854년(문성왕 16년)에 창건하여 952년(광종 3년)에 소실된 갈양사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다. 또한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에 명복을 빌어주는 능사로 창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원, 안성, 남양, 죽산, 진위, 음죽, 용인, 고양, 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하였다.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절로 969년(광종 20년)에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고 하였고 이후 1469년(예종 1년)에 정희왕후가 세조를 추모하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하였다.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성내에 있는 절로 381년(소수림왕 11년)에 창건하여 진종사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자가 1282년(충렬왕 8년)에 송나라의 대장경을 간행하여 절에 보관하고 옥등을 시주하여 전등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속리산에 있는 절로 553년(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고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법주라사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에 있는 절로 640년(선덕여왕 9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이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낙성식에 자장의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마와 같이 무성하여 마곡사라 칭했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마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주줄산에 있는 절로 604년 서암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다른 한편으로 신라말기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보니 세마리의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 하고 있어 위봉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락산에 있는 절로 885년(헌강왕 11년)에 조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였다.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절로 대둔사(大屯寺)라고도 한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이 절은 426년(구이신왕 7년) 신라의 정관존자가 창건하여 만일암이라고 하였고 508년 이름을 전하지 않은 선행비구가 중건하였다는 만일암고기의 기록 등으로 봤을 때 신라 말에 창건 되어진 것으로 따르고 있다.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에 있는 절로 632년(무왕 33년) 여환이 창건하여 백양사라고 하였으며 이후 정토사, 백암사로 바뀌었다가 다시 정토사로 개칭했다.
백양사로 명칭이 바뀐 것은 1574년(선조 7년) 환양이 중건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백양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에 있는 절로 대길상사 수선사(修禪寺)라고도 한다. 절의 이름은 조계산의 옛이름인 송광산에서 비롯되었으며 송광사의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신라말기에 체징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시는 길상사라고 불리었다.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로 875년(헌강왕 1년)에 도선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이 되는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이 옛 선인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며 이때문에 선암이라는 절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연기조사가 754년(경덕왕 13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버렸고 각성이 1630년(인조 8년)에 중건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있는 절로 493년(소지왕 15년)에 극달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년)에 왕사 심지가 중창하였는데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에 있는 절로 809년(현덕왕 1년)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이후 중창과 중건을 거쳐 1545년(인종 1년)에 천교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새로 절을 짓고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문 구계리 등운산에 있는 절로 681년(신문왕 1년)에 의상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다. 이후 최치원이 승려 여지, 여사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를 따서 고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에 있는 절로 588년(진평왕 10년)에 조사 운달이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고 하였으나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 1624년(인조2년) 혜총이 중창하였으나 1642년(인조 20년)에 소실되어 1649년(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등이 중수하였다. 절의 이름은 문경부사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에 죄를 짓고 운달산에 숨었다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이라는 아들이 낳았다. 하루는 큰 비바람이 분뒤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지금의 옛 터와 절의 섬돌이 서쪽에 남아 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에 있는 절로 643년(선덕여왕 12년)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로 부르던 것을 원효가 중창하여 머물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부처님 생존 때에 세워졌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의미한다.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절로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며 신라 애장왕 때 순응과 이정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한 것이며 해인사는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으나 장격각만은 온전히 보전되어 왔다.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에 있는 절로 646년(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을 통도사라고 한 연유는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 곳의 금강계단에서 득도를 한다는 뜻과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산형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다.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에 있는 절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 그 산정에 높이 50 여 척의 거암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에 물속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 하여 산명을 금정산이라고 하고 절을 범어사라고 한다.
-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 패엽리 구월산에 있는 절로 신라 중기에 법심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애장왕 때의 고승 구업조사가 창건하여 구업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신라 말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가 서역으로 수도차 갔다 돌아 오는 길에 패엽경을 갖고 귀국하여 이 절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패엽사로 고쳤다고 한다. 한편 6.25전쟁 이후 폐사가 되었다.
- 황해북도 사리원시 강성동 정방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기에 도선이 창건하였고 일제강점기 31본산의 하나로 황해도 9개 군의 절을 관장하였다.
- 평안남도 평양시 금수산에 있는 절로 31본산 시기 평안남도의 사찰을 관할했던 본산이었다. 동명성왕의 구제궁 유지에 392년(광개토대왕 2년)에 창건되었다. 1894년(고종 31년) 청일전쟁으로 몇 칸의 당우만을 남긴채 모두 불타 버렸다.
-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법흥리 법홍산에 있는 절로 창건 연대는 미상으로 법흥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때의 중창은 1123년(인종 1년)에 징오가 김부식과 정습명의 힘을 빌려서 대찰을 일으켰는데 당시 묘청의 난으로 희생된 고려왕실 계통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옛 절의 북쪽 10 여 보 되는 곳에 옮겨서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장 휴정이 승군을 집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現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묘향산에 있는 절로 서산대사의 입적처로 알려져 있으며 968년(광종 19년)에 창건되었으며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었다.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에 있는 절로 520년(법흥왕 7년) 아도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6.25전쟁으로 절이 폐허가 되고 불사리탑, 부도 등의 문화재만 전해진다. 다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강원도 고성군 서면 백천교리 금강산에 있던 절로 서기 4년(유리왕 2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53불의 연기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6.25전쟁으로 절이 소실되면서 유점사 능인보전에 보안되어 있던 53불은 함께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있는 절로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6.25 전쟁 1.4후퇴당시 칠불보전을 비롯한 10 여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 함경남도 안변군 석왕사면 사기리 설봉산에 있는 절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에 무학대사의 해몽을 듣고 왕이 될 것을 기도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가람으로 48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었다.
-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 경흥동 설봉산에 있던 절로 고려 문종때 붕현이 창건하여 정수사(淨水寺)라 하였다. 고려말에는 이성계가 글을 읽던 곳이어서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보호를 받았고 1401년(태종1년)에 이성계가 이곳에 은신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절의 이름을 귀주사로 바꾸었다.